1992년 처음 제주도를 다녀왔었다. 물론 단체 관광이었다. 그 당시 3박 4일 일정에 첫 날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항으로 입항하는 일정이어서 무척이나 바쁘게 움직였던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1995년 다시 제주도를 찾았다. 학부 수학여행으로 말이다. 이때 제주도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깊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9월 말로 바쁜 프로젝트 일정을 마치고 잠시 여유가 있는 틈을 타서 제주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95년 이 후 처음이니 벌써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뒤라 나름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했다. 일단, 제주도를 가기 위해 남아있는 마일리지를 좀 정리해 보았다. 대한항공의 호텔로 마일로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 17,000 마일씩 제주 칼 호텔과 렌트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과 마일리지 항공권을 통해 제주도 여행 경비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제주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2박 3일의 여정으로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한시간 정도의 비행시간 후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출발 전 렌트카 회사와 통화를 했는데, 공항에 마중나와 있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시 몰라 충전을 해서 가져온다는 것이 깜박하고 두고 온 것이다. 여하튼 이리 저리 물어보니 한진렌트카는 공항에 위치해 있지 않았다. 3번 출구에 가면 한진렌트카 셔틀이 다닌다는 것, 그래서 3번 출구에 가보니 다행이 한진 렌트카 셔틀이 있었다. 다행이 이 셔틀을 타고 한진 렌트카에 가서 차량을 렌트한 후 제주 칼 호텔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시간이 1시 정도여서 먼저 호텔에가서 체크인을 하였다. 특별한 스케쥴도 여정에 대한 계획도 없이 출발하였기에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았다. 95년 기억을 되살려보면 첫 날 도착후 용두암에 들렸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삼성혈을 들린 뒤 각자 숙소로 이동했던 기억에 호텔 안내 책자를 살펴보니 삼성혈이 호텔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걸어서 5분 이내의 거리에 삼성혈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삼성혈을 가보기로 했다. 입장료는 3,000원. 삼성혈은 제주 3개의 성씨인 고씨, 양씨, 부씨의 신조인 3신이 땅에서 솟아올랐다는 구멍이 있는 곳으로 국가 지정 사적 제134호로 지정된 삼성혈은 7,097평의 울창한 숲속에 혈단을 중심으로 삼 신의 위패가 봉안된 삼성전과 분향소, 제향을 받드는 전사청, 서원이었던 숭보당이 들어서 있다.
예전 수학여행의 기억은 되살릴 수 없었지만, 돌아보는 삼성혈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정원 배치나 돌담 등은 낮설은 이국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또한 평일의 한적함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객관적인 판단으로는 입장료에 비해 즐길 거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문화재의 보전 및 발전을 위해 입장료를 아깝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생각했다.
한 20 여분의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조금 아쉬웠다. 사실 첫 날을 관광보다는 이전의 기억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이전에 내가 다녔던 곳들... 추억들... 언제 제주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기에, 이전의 기억을 다시 제주에 묻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들을 더듬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20여분의 관람으로 인해 생긴 아쉬움을 달래고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세 번째 방문 역시 제주의 가을이었다. 제주는 가을에 대한 추억만이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였다. 그 중 하나는 제주의 억새... 사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곳이 있으나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때는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였고, 내리라면 내려서 관광하고 시간 맞춰 오라면 시간에 맞춰 왔기에 '멋있다. 아름답다.' 이런 기억은 있으나 장소는 잘 기억나지 않는 곳이 있다. 중문단지, 성산일출봉, 민속촌 이런 곳을 기억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곳은 어느 정도 기억을 하고 있으나, 그러지 못한 오름 등은 어디인지 잘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름이란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시절 기생 화산이 활동을 멈추고 봉우리 형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형태는 몇 가지 종류로 구분하고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제주 방언으로는 나즈막한 산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제주 사람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에서 죽는다는 얘기가 있다. 이만큼 유명한 오름이 제주에는 360여개 이상 존재한다고 한다. 그 중 몇 개를 갔었는데, 어떻게 기억이 나겠는가? 물론 유명하고 잘 알려진 대표적인 오름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그 오름을 다 돌아다닐 수는 없는 법. 그 중 억새로 유명하다는 새별오름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약 4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으며, 협제 해수욕장과 그리 멀지 않다. 애월읍에 위치한 새별오름은 억새로 대표적인 장소이다. 네비가 잘 못 가르쳐줘서 인지 아님, 입구를 잘 못찾아서 인지 새별오름 근처에서 무척이나 해멨다. 억새를 수확하고 있어 오름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근처에서 억새 구경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렇게 발걸음을 돌리기가 아쉬워 절부암이라는 곳을 가보기로 하였다. 절부암에는 애뜻한 사연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 한 아낙이 고기잡이 나간 신랑을 기다리다 풍랑을 만나 객이 되어버린 남편의 시신을 찾으려 해변가를 해메었으나 찾지 못하여 남편을 따라 바닷가 언덕 동산의 나무에 목을 메었다고 한다. 이 후 남편의 시신이 해변에서 발견되었고 마을사람들이 두 시신을 안장해 주었다고 한다. 이에 관가에서 비를 해주었고 이 후 절부암으로 불리게 된다.
사실 이곳은 차를 세우기 애매하게 되어있다. 잘 몰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두 대 정도 세우면 차를 주차하기 무척이나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미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이곳에서는 그냥 눈구경만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절부암으로 향하는길은 해안도로로 되어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구경하며 이동하는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또하나의 장관은 풍력 발전기였다. 예전에 제주도에 왔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이번 제주 관광하면서 보니 여러 곳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시 호텔로 향했다. 오는 길의 석양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협제 해수욕장에 들려 그 모습을 지켜볼까 하였으나, 작은 판단 착오로 용두암 근처에서 구경을 하기로 생각했다. 사실 용두암은 제주 북쪽에 있고 협제 해수욕장은 서쪽에 있다. 아마 협제 해수욕장에서 석양을 바라보았다면 정말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자 급히 이동해서 도착했던 용두암에는 석양에 지는 노을만 보일 뿐 정작 석양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첫 날은 그렇게 아쉬움의 연속으로 마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간단히 저녁을 호텔 근처에서 해결하고 예전 수학여행 때 동기들과 같이 갔었던 포장마차 촌을 찾아보기로 했다. 95년도에 숙박했던 호텔에서 동기들과 술을 먹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장소를 옮기기로 하고 무작정 나와 택시를 타고 이동했었다. 근처에 방파제가 있었고 배들이 보였던 기억만 남아 있을 뿐 이름도 위치도 잘 몰랐다. 다만 항구 근처라 배들이 많이 정박되어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날 뿐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그 당시 칼호텔 간판이 보였던 것으로 짐작되어 숙소도 제주 칼 호텔로 정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칼 호텔에서 나와 제주항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예전에 그리 멀지 않았던 것 처럼 기억되어 걷기 시작한 것이, 한 시간 여를 걸었던 것 같다. 어느 덧 제주항이 보였고 문득 눈에 익지 않은 광경과 새로이 바뀐 제주항의 모습에 무척이나 놀랐다. 잘못된 길을 온 것 같은 생각에 발걸음을 다시 돌려 호텔로 향하던 중, 눈 앞에 보여지는 풍경이 예전 모습과 비슷한 곳이 눈에 들어 헤메고 헤메면서 이동한 곳은 다름아닌 제주 탑동 공원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15년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좁은도로에 많았던 차들, 그곳에 북적대고 있는 사람들 틈없이 붙어있던 포장마차, 그 뒤로 보이는 방파제에 옹기 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의 대화소리들...' 이런 모습은 간데 없고 주변에는 정비되어 있는 회집들과 근린공원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에는 차 한대 없었다. 몇 명의 아이들만 농구를 하고 있고 몇 명의 관광객이 방파제 넘어 파도를 구경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방파제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방파제에 기대어 앉아 멀리 보이는 밤바다의 고기잡이 배를 바라보며 바다를 떠올리던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 거렸다. 예전의 정취가 사라진 아쉬움에 담고 있던 추억들을 바다에 던져두고 다시 걸어왔던 길을 돌려 호텔로 향했다.
이렇게 제주의 첫날은 흘러갔다. 아쉬움의 연속, 많이 바뀐 제주의 모습은 과거의 추억은 추억으로만 존재할 뿐이라는 시간은 절대 멈추어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